2009년 4월 2일 목요일

노출과 공개



John Collier - Lady Godiva(1898)

존 콜리에(John Collier, 1850-1934)의 그림이다. 고다이버(Godiva), 혹은 고디바를 묘사한 그림 중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그림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다이버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Coventry) 지역의 영주 레오프릭(Leofric)의 부인이었다. 영주의 과도한 세금 징수에 소작농들이 힘들어하자 고다이버는 레오프릭에게 감세를 요청한다. 거듭된 부인의 요청에 레오프릭은 만약 그녀가 나신으로 마을 거리를 나돌 수 있다면 요구를 수락하겠다고 말한다. 고다이버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소식이 흘러나갔다. 고다이버가 의복 없이 말을 몰아 거리를 지나갈 때 주민들은 모두 창과 문을 닫고 그녀를 보지 않음으로써 고다이버의 숭고함을 지켰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여러 사료상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일종의 전설이다. 그녀의 나신을 보려다 눈이 멀었다는 재단사 톰(peeping Tom)의 이야기, 그녀를 수행했던 두 기사의 이야기 등 다양한 변종들이 전해진다. 역사적 사실의 진위와,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평가는 논외로 하고 이 이야기를 하나의 사례로 하여 노출과 공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경범죄처벌법이 있다. 법 제1조 41항에 따라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함부로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거나 또는 가려야 할 곳을 내어 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을 받게 된다. 일명 "과다노출"의 죄이다. 그런데 인간의 벗은 몸, 벗는 행위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단지 나신이라는 이유로 경범죄처벌법에 적용받는 일은 없다. 개인 공간, 목욕탕, 수영장 탈의실 등지에서의 과다노출은 위법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노출로 인해 영향을 받는 ‘대중’ 혹은 ‘공공’이라는 대상에 있다. 즉 과다노출은 공공나신노출(NIP, Nudity In Public)과 같은 경우에 처벌받게 된다. 그리고 과다노출의 판단은 노출로 인해 대상이 받아들이는 부정적인 정도의 기준(indecency standard)에 따른다.



과다노출에 대한 부정적인 정도의 기준, 혹은 사회통용의 기준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어서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일부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공공나신노출에 대한 금기가 없다. 독일, 스칸디나비아, 스페인 등에서는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옷을 벗는 것도 하나의 개인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캐나다의 토론토에서는 상반신 공공노출이 불법이 아니다. 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 및 지역은 모든 공공장소 혹은 일부 정해진 구역에서의 공공노출을 허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30여 년 전에 여성의 무릎과 치마 사이의 길이를 자로 재어 그것이 일정 정도를 넘어가면 과다노출죄로 처벌키도 했다.



개인의 신체를 마음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경범죄처벌법 중 과다노출 조항과 대비되는 법률이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다(이하 정보공개법). 1996년 제정된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노출시키지 않는 정보들에 대해서 노출시키도록 만드는 법률이다. 국민은 공공기관에서 생성된 정보를 획득하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래서 특정 이유로 공공기관이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 모든 국민은 그들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경범죄처벌법은 과다노출로 인한 시민의 부끄러운 느낌 유발, 불쾌감 유발을 처벌의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처벌의 기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주관적이며 상대적이고 변화하기 때문에, 관련된 사건과 사실 관계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정보공개법은 제9조에서는 공공기관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로 크게 8가지 항목을 든다. 그 중 하나인 제5항, “감사·감독·검사·시험·규제·입찰계약·기술개발·인사관리·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검토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에 해당하는 경우 공개청구된 정보를 비공개처리할 수 있다. 이 때 정보공개 요청자는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원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정보공개신청하거나, 해당 비공개 처리건에 대한 이의신청을 시도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관련된 정보공개신청 건이나 이의신청까지 동일한 제9조 제5항을 근거로 비공개처리될 수 있다. 이는 조항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해석의 주관성 때문이다. 정보공개를 요청받은 공공기관이 해당 정보공개로 인한 파급효과를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쇄적이다. 또한 법령상의 ‘현저한 지장’ 또한 해당 공공기관의 업무상 발생을 가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공공기관의 주관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국민이 옷을 입고 벗는 것을 규제하는 잣대에서 집행기관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기준에도 폐쇄적인 주관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16살의 영주 부인 고다이버가 조선 개국 이후 한반도에서 나신으로 말을 탔다면 그 이유를 막론하고 처벌되었을 것이다. 영국과는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토 어디의 공공장소에서도 여성은 토플리스(topless) 할 수 없다. 토론토와 서울은 역사․문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은 상원과 하원의 정보 중 그들의 효과적 공무수행을 방해할 수 있는 정보는 전체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한다. 영국 기타 공공기관의 경우 공익성 심사를 통해서 비공개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 일본의 정보공개법(行政機関の保有する情報の公開に関する法律)에서도 공공기관의 사업 성질에 따라 당해 사무 또는 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정보에 대해서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독일, 미국, 호주 등의 정보공개법 및 유사법률에서는 그런 항목의 비공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정보공개에 관한 이들 국내외의 법률은 모두 동일하지 않다. 이 또한 역사와 문화의 상대성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분명하며 동일한 것은 정부 및 공공기관이 자신들의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길 꺼려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분명한 점은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정보가 적합하게 공개될수록 국민의 권리는 지켜지고 확충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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