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8일 목요일

아팔라치아 트레킹

아팔라치아 산맥 트레킹(Appalachian Mountain Trekking)


미국 동부 조지아에서 매인까지 이어지는 약 3000킬로 트레킹 구간입니다.

이 산맥은 예전 영화 ‘라스트 모히칸(The last of the Mohicans)’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보통 종주하는 데 5개월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시작점부터 종착점까지 산길을 따라 가는 사람들을 풀 트레커(full trekker), 일정 구간만 산행하는 사람들은 섹션 트레커(section trekker)라고 부릅니다. 저는 섹션 트레커로 약 200킬로 걸었습니다. 아팔라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큰 규제 없이 자연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A.T. 산길 구간마다 설치된 안전사무실이나 안내소에서 오지캠핑허가(Backcountry camping permit)을 받으면 산행구간 어디서든 음식을 하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다만 캠핑에서 겪을 수 있는 야생동물이나 인간으로부터의 위험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합니다. 자연을 다른 인간의 구속 없이 자유롭게 즐기는 일은 어떤 측면에서는 위험합니다.

대부분의 산길을 혼자 걷습니다. 구간이 긴 만큼 산 속 인구밀도가 현저히 낮습니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한 명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풀 트레커든 섹션 트레커든 남쪽에서 북쪽으로 산행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코스는 햇살 때문에 많이 힘듭니다.) 빅토리아 주에 사는 선배의 말로는 제가 오기 한 달 전 A.T.에서 두 명의 등산객이 강도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간혹 저녁 어스름할 때 사람을 만나면 무섭습니다. 홀로 걷는 대낮에도 산길 꺾어지는 곳에서 큰 검은 곰을 만났을 때는 정말 두려웠습니다. 사실 이 검은 곰(Black bear)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산딸기를 주식으로 하며 람을 거의 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곰뿐만 아니라, 늦은 오후 텐트치려고 자리 고르다 다채로운 색깔의 뱀을 봤던 날은 잠을 이루기 힘들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A.T. 수풀에는 무서운 진드기(tick)가 있어서 최악의 경우 진드기로 인해 죽을 수 있습니다.

길지 않은 구간, 오래지 않은 시간이지만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며 산에서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몸이 조금 힘들기는 합니다. 간간히 있는 오두막 대피소 근처의 간이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합니다. 사실 대부분은 등산로 갓길로 조금 들어가 자연 속에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물은 간혹 있는 시냇물이나 샘물을 받아 10분 이상 끓여서 먹거나 화학 정수제를 사용해 마셔야합니다. 식량 보급소(camp store)가 짧게는 2일 멀게는 5일 간격으로 있어서 평균 3일치의 식량은 배낭에 넣고 다닙니다. 물은 항시 2~3리터를 채우고 다녀야 해서 배낭은 기타 필수 도구들이 더해져 보통 20~25킬로 정도 나갑니다. 그걸 매고 하루 평균 20킬로 정도 걷습니다. 잠은 텐트에서 자거나 작은 오두막 대피소에서 잡니다. 샤워는 거의 할 수 없습니다.

여성과 60이상의 노인이 그런 힘든 산길에서 전체 산객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여성, 특히 제가 만났던 여성들은 대부분 왜소한 저보다 체구가 좋고 몸무게도 더 많이 나가는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주어진 자연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길이 A.T.인 듯합니다.

혹시 ‘인 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에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주인공이 문명에 대한 의존을 최대한 벗어난 절대적 자유를 찾아 알라스카로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끔 야생 속에서의 원초적 자유를 꿈꾸던 내게 A.T.는 꿈과 현실은 다르다는 진리를 새삼 알려주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알렉산더 슈퍼트램프’라는 이름을 가집니다. A.T. 트레커들은 본명이 아닌 트레킹 이름을 씁니다. 스스로 짓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붙여주기도 합니다. 인간 사회에서 벗어난 자연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이름으로 자신이 만드는 삶을, 몇 달이거나 아니면 며칠이 되더라도 살아가겠다는 거지요. 저는 산행 첫날 밥을 해서 젓가락을 먹었는데 그걸 본 ‘씽크 탱크(Think Tank)'가 저의 트레킹 이름을 ‘촵스틱(chopstick, 젓가락)’으로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저는 ‘촵스틱’보다 ‘촵(chop)’이 낫겠다고 하며 그 후 열흘 동안 ‘촵’으로 지냈습니다.

A.T.는 외줄기 산길이고 트레커들은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걷기 때문에 만났던 사람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계속 만나게 됩니다. 같이 걷기도 하고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다가 같이 잠들기도 합니다. 자연을 즐기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다른 트레커들과 만나고 알아가는 행복도 컸습니다.

A.T에서는 인간보다 곰, 사슴, 뱀, 여우, 말, 개, 토끼, 개미, 거미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혼자 독백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혹시 미국 동부에 가시는 분들, 그리고 잠시 인간의 사회에서 ‘into the wild'하고 싶으신 분들은 잠시 시간을 내어 하루 이틀이라도 A.T에 발을 디뎌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2009년 4월 2일 목요일

노출과 공개



John Collier - Lady Godiva(1898)

존 콜리에(John Collier, 1850-1934)의 그림이다. 고다이버(Godiva), 혹은 고디바를 묘사한 그림 중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그림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다이버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Coventry) 지역의 영주 레오프릭(Leofric)의 부인이었다. 영주의 과도한 세금 징수에 소작농들이 힘들어하자 고다이버는 레오프릭에게 감세를 요청한다. 거듭된 부인의 요청에 레오프릭은 만약 그녀가 나신으로 마을 거리를 나돌 수 있다면 요구를 수락하겠다고 말한다. 고다이버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소식이 흘러나갔다. 고다이버가 의복 없이 말을 몰아 거리를 지나갈 때 주민들은 모두 창과 문을 닫고 그녀를 보지 않음으로써 고다이버의 숭고함을 지켰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여러 사료상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일종의 전설이다. 그녀의 나신을 보려다 눈이 멀었다는 재단사 톰(peeping Tom)의 이야기, 그녀를 수행했던 두 기사의 이야기 등 다양한 변종들이 전해진다. 역사적 사실의 진위와,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평가는 논외로 하고 이 이야기를 하나의 사례로 하여 노출과 공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경범죄처벌법이 있다. 법 제1조 41항에 따라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함부로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거나 또는 가려야 할 곳을 내어 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을 받게 된다. 일명 "과다노출"의 죄이다. 그런데 인간의 벗은 몸, 벗는 행위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단지 나신이라는 이유로 경범죄처벌법에 적용받는 일은 없다. 개인 공간, 목욕탕, 수영장 탈의실 등지에서의 과다노출은 위법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노출로 인해 영향을 받는 ‘대중’ 혹은 ‘공공’이라는 대상에 있다. 즉 과다노출은 공공나신노출(NIP, Nudity In Public)과 같은 경우에 처벌받게 된다. 그리고 과다노출의 판단은 노출로 인해 대상이 받아들이는 부정적인 정도의 기준(indecency standard)에 따른다.



과다노출에 대한 부정적인 정도의 기준, 혹은 사회통용의 기준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어서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일부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공공나신노출에 대한 금기가 없다. 독일, 스칸디나비아, 스페인 등에서는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옷을 벗는 것도 하나의 개인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캐나다의 토론토에서는 상반신 공공노출이 불법이 아니다. 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 및 지역은 모든 공공장소 혹은 일부 정해진 구역에서의 공공노출을 허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30여 년 전에 여성의 무릎과 치마 사이의 길이를 자로 재어 그것이 일정 정도를 넘어가면 과다노출죄로 처벌키도 했다.



개인의 신체를 마음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경범죄처벌법 중 과다노출 조항과 대비되는 법률이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다(이하 정보공개법). 1996년 제정된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노출시키지 않는 정보들에 대해서 노출시키도록 만드는 법률이다. 국민은 공공기관에서 생성된 정보를 획득하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래서 특정 이유로 공공기관이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 모든 국민은 그들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경범죄처벌법은 과다노출로 인한 시민의 부끄러운 느낌 유발, 불쾌감 유발을 처벌의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처벌의 기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주관적이며 상대적이고 변화하기 때문에, 관련된 사건과 사실 관계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정보공개법은 제9조에서는 공공기관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로 크게 8가지 항목을 든다. 그 중 하나인 제5항, “감사·감독·검사·시험·규제·입찰계약·기술개발·인사관리·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검토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에 해당하는 경우 공개청구된 정보를 비공개처리할 수 있다. 이 때 정보공개 요청자는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원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정보공개신청하거나, 해당 비공개 처리건에 대한 이의신청을 시도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관련된 정보공개신청 건이나 이의신청까지 동일한 제9조 제5항을 근거로 비공개처리될 수 있다. 이는 조항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해석의 주관성 때문이다. 정보공개를 요청받은 공공기관이 해당 정보공개로 인한 파급효과를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쇄적이다. 또한 법령상의 ‘현저한 지장’ 또한 해당 공공기관의 업무상 발생을 가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공공기관의 주관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국민이 옷을 입고 벗는 것을 규제하는 잣대에서 집행기관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기준에도 폐쇄적인 주관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16살의 영주 부인 고다이버가 조선 개국 이후 한반도에서 나신으로 말을 탔다면 그 이유를 막론하고 처벌되었을 것이다. 영국과는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토 어디의 공공장소에서도 여성은 토플리스(topless) 할 수 없다. 토론토와 서울은 역사․문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은 상원과 하원의 정보 중 그들의 효과적 공무수행을 방해할 수 있는 정보는 전체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한다. 영국 기타 공공기관의 경우 공익성 심사를 통해서 비공개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 일본의 정보공개법(行政機関の保有する情報の公開に関する法律)에서도 공공기관의 사업 성질에 따라 당해 사무 또는 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정보에 대해서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독일, 미국, 호주 등의 정보공개법 및 유사법률에서는 그런 항목의 비공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정보공개에 관한 이들 국내외의 법률은 모두 동일하지 않다. 이 또한 역사와 문화의 상대성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분명하며 동일한 것은 정부 및 공공기관이 자신들의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길 꺼려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분명한 점은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정보가 적합하게 공개될수록 국민의 권리는 지켜지고 확충된다는 것이다.

2009년 4월 1일 수요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